중심은 예수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구원의 두 가지 조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세계타임즈 = 이채봉 기자] 중심은 예수님
예수님은 마태복음 7:21에 예수님을 “주여, 주여!" 해도 아버지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셨고, 바울은 로마서 10:13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는다고 하였다.
한쪽에서는 이름만 불러서는 안 된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이름만 부르면 구원받는다고 하니, 겉으로 볼 때 두 의견이 상충된다. 그럴때, 당연히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최우선으로 두고, 그 기준에 맞추어서 다른 성경 구절을 이해 해야 한다. 그러면 반대 의견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결국 같은 말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최우선에 두지 않으면, 모든 성경 구절을 제각각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게 된다. 예수님이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며, 바른 길잡이의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 길을 놓치면 전체의 중심이 사라져서, 구원의 길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항상 중심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로마서 10:6-13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리려는 것이요
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3을 먼저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다. 우리가 누군가를 “주로 섬긴다면, 주인으로 섬긴다면, 그 말에 절대복종하고 그 뜻을 철저히 따른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란, 예수님이 전한 아버지 뜻을 행하는 자다. 단순하게 이름만을 불러서 구원받는다면, 마태복음 7:21의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들어간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맞지 않게 된다.그러나 "주의 이름"의 개념을 올바로 정의한다면, 예수님의 뜻과바울이 전한 내용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6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믿음이 있는 의로운 자들은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않고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않는다. 누구는 하늘에 올라가고 누구는 지옥에 갈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런 말도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믿어 의로운 자들은 자기 종파에 와야만 구원받고 다른 종파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을하지 않는다. 누구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만약 남을 이단이고 사탄이라고 정죄하고 판단한다면 의로운 자가 아니다.또한 8절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운 자들은 "말씀이 입과 마음에 있다" 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말씀을 생각하고, 그들의 입에서는 그저 성령의 말씀만 나오기에 입과 마음에 말씀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의로운 말씀이 가득하고,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 또한 의로운 말씀이 나오게 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이다.
로마서 3:31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였다. 믿음이있다면 율법을 굳게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믿기만 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율법을 폐하는 자가 되어선 안 된다. 진정으로 믿는 자들은 율법을 굳게 지킨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라
9절에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깨달았기에 그 입에서 깨달은 "말씀" (8절)이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따르고, 그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이웃에게 "말씀을 전하여 언행일치가 되는 자가 의로운 자며,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자다.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뜻과 반대로 행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 하는 자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는다" 함은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것이다. 살아난 예수님을 믿는 것이아니라 그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시고 오직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하셨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가복음 12:30) 하시며, 오직 하나님 한 분을 경외하라고 강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을 믿으라 했으니,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고,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 영을 살릴 수 있는 권한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의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으니, 예수님이 이룬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관에 의해 행한 것이다. 우리도 죽음과 맞바꾸지 않을 정도의 마음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살리실 것이며, 구원받게 된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10절,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하셨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난 후에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게 된다. 의인이 된 후에 입으로 말씀을 전할 때 구원 받는 것이다. 말로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하는 것만으로는구원에 이를 수 없다. “입술로 시인"할 수 있는 자격은 “의인이 된자에게만 주어진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앞서 6절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마음속에 말씀으로 가득 차서 그게 바른 행동으로 드러나기에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의롭게 된 자가 그 깨달은 말씀을 이웃에게 입으로 많이 전할 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이 구절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한 점 부끄럼 없는 의인이 되어 많은 사람을 깨우쳐 줄 때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자기 혼자 의인이 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된 후에 입으로 시인하여,즉 이웃에게 말씀을 전하여 깨우쳐 주어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는 자는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법으로 살기에 당연히 그의 모든 행동이 의롭다. 의롭지 않고 법에 저촉되는 삶을 살면 그는 믿는 자가 아니다. 또한, 자기가 의롭게 되었다 해도 자기 혼자 깨달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을 이웃에게 전해서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때, 자신이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웃을 깨우쳐 구원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열매를 맺지 않는 깨달음은 구원과 관계가 없다.
의로운 자에게는 자신의 깨달음까지도 이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 깨달음은 쓸모가 없다. 먼저 믿음을 가진 자로서 의인으로 바로 선 후에 이웃에게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 다음 구절인로마서 10장 14절 이후의 말씀이 계속 전도를 강조한 것을 보면 이대목 역시 전도를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원의 두 가지 조건
거의 모든 교인들이 그저 예수님을 믿고 주로 시인한다고 떠들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면,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태복음 15:8) 하신 말씀과 상반된다. 마태복음에는 입술로 존경하고 "주님" 하면서 찾지만, 마음속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없음을 질타하셨으니, 단순히 "믿습니다" 하고 시인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이 없다. 반드시 마음속에 믿음의 말씀이 가득하여 의인이 되는 것이 첫째 조건이며, 그 후에 입술로 시인한다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전도가 뒤따르고 그 전도의 열매를 맺어 많은 사람을 깨우쳐 주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이다. 그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며 말로만 시인하면 구원받는다는 현재 대다수의 기독교 교리는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심에 놓지 않고 성경을 풀기에 엉뚱한 구원론을 만들어 버렸다. 한 자도고 더하지 말라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빼놓고 바울의 교리만 가르치기에 믿음 전체가 잘못되었고, 오늘의 교회가 부패하게된 원흉이 된 것이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자
11절에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를 믿는 자는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기에 계명을 지키며 죄짓지 않는 의인이 된 자다. 그러하기에 남들이 볼 때 부끄러운 행위를 하나도 하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으며, 남에게 지탄받을 일 또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믿음의 말씀이 마음속에 가득하여 의인이 된 자는 남에게 손가락질받는 행위를 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남이 볼때 부끄러운 행위를 한다면 그는 믿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늘 마음에 기억하고 있는 자체가구원의 기초가 된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다고 생각 하면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고,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삶을 살 수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12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하셨으니, 믿는자나 믿지 않는 자를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13절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가르침을 인정하고 마음에 깨달음을 갖고 존경하고 따른다는 의미지, 단순히 그 이름을 찾는 것으로 가르쳐서는 안된다.
우리가 "엄마"를 부를 때, 단순히 엄마를 찾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과 믿음과 신뢰가 모두 포함되어 "엄마"라는말로 부른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엄마"라고 부른다면 상대방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아무리 "엄마"라고 믿고 불러도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세상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남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가 되려면, 그만큼 서로 신뢰하고 믿고 친숙하며 그를 잘 따랐을 때, 상대방이 그 말을 간신히 받아들여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주님" 하고 예수님을 불러도, 예수님이 그 말을 인정할 수 있도록 우리가 믿고 따르고 가르침을 깨닫고 순종하고 행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가르침을 지키지도 않고 무조건 "주여" 하고 부른다면, 예수님 입장은 어떻겠는가?
더 이상 공허한 "주여"를 외치지 말자. "주여" 하고 부른다면, 그뜻을 따르고 가르침에 순종해야만 한다. 그래서 의인이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바르고 정의로운 삶을 살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믿음의 개혁을 하셨다. 정의로움을 위해 싸우셨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셨다. 지금의 모든 교회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곳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면에 내세워야만 할 것이다. 깨어 있는 신도들이 각자 스스로 성경을 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서, 매서운 개혁의 칼을 빼야 한다. 그런 대변화 없이는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경고를 예수님이 성경 곳곳에 남기셨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충성하자.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깨우치자.
예수님처럼 의로운 일에 앞장서자.
예수님처럼 인류를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 목숨을 아까워 하지 말자.
당신이 의롭다면, 이미 구원을 초월한 하나님의 자녀다.
의로운 자,
당신 뒤에는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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