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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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무부는 지난 4월 25일(현지 시각)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이 연율 기준으로 1.6%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4분기3.4% 대비 절반 이하로 성장률이 둔화한 것은 물론이며,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전문가들의 1분기 금융시장 예상치인 2.4%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2022년 2분기의 -0.6% 성장률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이후 뉴욕증시는 1% 이상의 하락세를 보였다. 게다가 같은 날 발표된 올해 1분기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3.7% 상승해 지난해 4분기 상승률 2.0%를 크게 웃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물가가 두 배 가까운 1.85배로 다시 치솟은 셈이다. 예상치였던 3.4%도 웃돈 수치다.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가 가장 중요시하는 물가 지표다.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 속 경제가 성장했던 미국의 ‘골디락스(Goldilocks)’ 시대가 끝났다고 진단하면서 경착륙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불안한 중동 정세에 따라 경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25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계은행(WB)은 중동 분쟁이 확산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에너지 쇼크’를 촉발하고 고금리를 내년까지 지속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물가로 인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은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더 늦출 수밖에 없는데, 성장률까지 낮아지면 침체와 물가 상승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 성장을 갉아먹은 건 킹달러 후폭풍이었다. 킹달러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이 물가와의 전쟁을 위해 긴축 정책을 편 영향이 크지만 이에 못지않게 미국 정부의 국채 남발도 무시 못할 요인으로 꼽힌다. 통화 강세 여파로 수출이 0.9%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수입은 7.2%나 늘어나면서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0.86%포인트에 달했다. 대외 부문만 나쁘지 않았어도 성장률이 2.5% 정도로 올라갈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2%대 중반을 기대했던 1분기 성장률이 1%대로 급감했는데 그 이유가 물가상승으로 여겨져서다. 물가가 낮아지는 가운데 지표는 미시적으로 ‘울퉁불퉁’하게 나올 수 있다고 무시했는데 물가는 한 두 달이 아니라 올해 1분기 내내 전체적으로 끈적끈적해져서 성장률까지 잡아먹은 것이다. 지난해 미국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1조 6,95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했다. 건전재정의 기준인 ‘GDP 대비 3%’를 훨씬 넘는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반도체 보조금, 학자금 탕감 등 대규모 지출을 거듭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이러한 이상 신호가 막 회복세를 보이며 ‘깜짝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커진 한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기 위축과 고물가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대형 악재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3%로 2021년 4분기 1.4%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분기 성장률에 기획재정부는 “성장경로에 선명한 청신호”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1분기 ‘깜짝 성장’은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늘어난 수출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 속엔 ‘반도체 착시’ 효과가 크게 자리한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무역수지는 168억 달러 흑자이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319억 달러 적자다. 특히 달러당 1,400원을 육박하는 환율은 수출 대기업에는 유리하지만 물가 상승과 내수 위축이란 역효과가 크게 작용한다. 게다가 중국 경제의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마저 성장세가 둔화할 경우 한국의 수출은 발목을 잡힐 수 있다. 1분기 한국의 총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18%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넘어서 1위에 올랐다.
가뜩이나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현상 때문에 체감 경기가 위축되고 가계·기업의 부실화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미국 연준(Fed)발(發) 고금리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당연히 금융 시스템 불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3고(高)’의 삼각 파도는 서민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위기의 파고(波高)가 어디까지 높아지고 파장(波長)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가 잘 팔려 전체 수출이 기대를 뛰어넘는 실적을 냈지만 이런 호조도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엔비디아엔비디아(NVIDIA) 주문을 받아 AI 반도체를 만드는 대만 TSMC가 최근 올해 성장률 목표를 절반으로 낮춰 잡을 정도로 반도체 시장이 위축될 것이란 불안감도 적지 않다. 석유화학, 철강 등의 분야에선 중국이 과잉생산된 제품의 덤핑 수출에 나서면서 전망이 오히려 더 어두워지고 있다.
게다가 중동 전쟁에서 발생하는 작은 변수에도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이상기후 등으로 폭등한 먹거리 물가는 안정될 기미가 도대체 없어 보인다. 공사비·인건비 급등으로 인해 아파트 착공 건수가 급감하는 등 내수에 영향을 미치는 건설경기 역시 최악이다. 올해 2월 은행 연체율이 0.51%로 4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달했을 정도로 금융권이 안고 있는 부채 부실화 부담이 큰 데다 111조 원 규모에 달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됐다. 게다가 1분기에 우리나라 수출 비중의 18.9%를 차지한 최대 수출국인 미국의 경기 침체는 반도체 호황 덕에 간신히 되살아난 우리의 수출 경기를 다시 한번 얼어붙게 만드는 악(惡) 요인이 될 수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최근 “오랜만에 성장 경로에 ‘선명한 청신호’가 들어왔다”라고 한 것은 이런 점에서 성급해 보인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절대 방심해서는 아니 된다.
문제는 재정적자를 국채를 찍어 메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결과 채권시장에서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고 고금리를 노린 해외 자금이 유입되면서 달러 가치를 밀어 올리는데, 이번에 그 여파가 성장률 저하로 나타난 것이다. 과도한 재정적자와 국채 남발은 물가도 불안하게 만든다. 한쪽에선 연준(Fed)이 물가를 잡겠다며 긴축하는데 다른 한쪽에선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고 있으니 물가가 쉽게 잡힐 리 없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근원물가가 잘 안 떨어지는 배경 중 하나로 미국의 느슨한 재정정책을 꼽고 있다. 세계 경제도 타격을 입는다. 미국의 신용등급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지난해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 수준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는 최고 등급은 유지했지만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계속지는 건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바로 미국의 성장률 쇼크가 주는 교훈이다.
그동안 경험치는 한국 경제는 미국 경기가 좋을 땐 함께 좋아지지 않을 수 있어도 대체로 나빠질 땐 함께 나빠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만에 하나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물가가 오른다면 한국은 경기 침체와 함께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악재를 더 오래 마주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더 지속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국 경재가 맞닥뜨린 예상치를 훨씬 하회(下廻)한 경기 성장세 둔화와 예상치를 훨씬 상회(上廻)한 물가지수를 동시에 직면한 미국 연준(Fed)은 기준금리 조절 방향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미국 연준(Fed)이 경기 성장세 둔화를 일정 수준 감수하더라도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오히려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대외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을 다지며, 전략산업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만 한다. 또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경제 안전벨트’를 단단히 옥좨야 한다. 물가 지표가 여전히 연준(Fed)의 목표치인 2%와는 아직도 거리가 먼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재차 낮아지는 모습이다. 따라서 지금은 고금리 기조 장기화 가능성을 상정하고 이를 대비한 가계·기업 부실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할 때이다. 초격차 기술력 확보와 시장·품목 다변화로 수출 길을 확장하는 것도 필수다.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들이닥칠지도 모를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 총체적 복합위기)’의 파고(波高)에도 우리 경제는 휩쓸리거나 침몰하지 않도록 미리 방파제를 튼튼하게 쌓고 유연한 선제 대응에 나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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