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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26일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세수 재 추계 결과 및 대응 방향’에 다르면 올해 국세 수입은 337조 7,000억 원으로 2024 회계연도 기정예산 367조 3,000억 원보다 8.1%인 29조 6,000억 원이나 부족할 것으로 예상됐다. 사상 최대 ‘세수 결손’을 보인 지난해보다 다소 줄어들었지만, 당초에 잡아놓은 기정예산에 비해 세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은 국가 살림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비상한 각오가 요구됨에도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은 없다”라는 원칙만 되풀이할 뿐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불안감만 더 키우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국세 수입 부족은 글로벌 복합위기의 여파로 인한 2023년 기업 영업이익 하락,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자산시장 부진 등에 기인한다. 2023년 글로벌 교역 위축, 반도체 업황 침체에 따른 법인세 세수 감소 폭이 당초 예상보다 큰 가운데, 부동산 거래 부진 지속으로 양도소득세 등 자산시장 관련 세수가 부진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또한, 민생안정을 위해 실시한 유류세 인하 연장, 긴급 할당관세에 따른 영향이 일부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충격적 이게 불과 2년 새 86조 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세수 부진은 나랏빚을 늘려 재정건전성을 해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올해 1·4분기 말 기준 정부부채 규모를 1,119조 2,597억 원(8,234억 300만 달러)으로 추산했는데 올해 1,2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한국은행 차입금도 올해 상반기에만 91조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재정 기반이 흔들리면 침체한 내수를 살리기 위한 재정 대응 능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금이 덜 걷힌 데는 기업 경기 악화와 자산시장 침체가 가장 컸다. 법인세와 양도소득세가 세수 오차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법인세 수입은 63조 2,000억 원으로 기정예산보다 14조 5,000억 원 줄어드는데, 전체 결손액 29조 6,000억 원의 절반가량(48.99%)을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 교역 위축, 고금리 장기화에 반도체 업황 침체가 겹쳐 전망보다 기업 영업이익이 더 하락한 영향이다. 납부액 1, 2위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적자로 올해 아예 법인세를 내지 않게 됐다. 양도소득세도 건설투자 등 자산시장 부진으로 당초 목표보다 5조 8,000억 원이나 덜 걷힐 것으로 추정됐다.
게다가 내수 경기 둔화까지 겹치면서 종합소득세 역시 4조 원이나 줄어들게 되었고, 상속·증여세도 5,000억 원씩이나 각각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아울러 유류세 인하 조치와 긴급 할당관세 등에 따라 교통에너지환경세도 4조 1,000억 원이나 줄어들고 관세도 1조 9,000억 원이나 전망치에 미달할 것이라 기획재정부는 내다봤다. 지난해에도 법인세(-23조 2,000억 원)와 양도세(-14조 7,000억 원)가 세수 결손의 주범이었다.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중동 전쟁 등 외생변수의 영향이 없지 않지만, 세수 부족의 원인이 반복해 나타나는 건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대규모 ‘세수 펑크’ 사태가 빚어진 것은 정부가 경기를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전망한 탓이 크다. 특히, 법인세의 경우 작년 하반기 기업 실적이 올해 세수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는데, 정부는 지난해 8월 중순까지도 경기 흐름에 대해 “상저하고(上低下高 │ 상반기 저조, 하반기 반등) 전망은 변함없다”라고만 강조했다.
세수가 부족하면 당연히 추가경정예산으로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원 확충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건전재정을 이유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경예산 편성을 하지 않겠다고 애당초 못을 박았다. 그렇다면 세원 발굴이나 지출 구조조정안이라도 내놔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보이지 않고 있어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기껏해야 나올 수 있는 처방은 ‘남는 기금 활용’이나 ‘써야 할 예산을 안 쓰는 불용’뿐일 텐데 이는 정상적 재정 운용이 아니라는 것을 명찰해야 한다. 마치 지난해 세수 손실을 메우기 위해 환율 변동 대응을 목적으로 한 외국환평형기금 20조 원 차용이나 한국은행 대출 91조 원을 동원한 꼼수만 연상이 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도 기획재정부의 세입예산 추계는 지나칠 정도로 오차가 크다. 추계이기 때문에 오차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61조 3,000억 원(오차율 21.7%), ▷2022년 52조 6,000억 원(15.3%), ▷2023년 –56조 4,000억 원(-14.1%), ▷2024년 –29조 6,000억 원(-8.1%) 등 4년째 대규모 세수 오차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역대급 결손에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는 참으로 이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높은 무역 의존도로 외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법인세를 중심으로 추계가 어려웠다는 게 정부 해명이다. 코로나19 이후인 2020∼2023년 주요국들의 평균 세수 오차율은 독일이 5.7%, 일본이 7.3%, 미국이 7.8%, 영국이 9.6%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무려 12.4%나 된다. 결코 가볍게 볼 사안만은 아니다. 예산의 기본인 세수 추계가 잘못되면 나라 살림을 짜임새 있게 운영할 수 없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월 26일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기재부의 장관으로서 이 유아를 불문하고 코로나19 이후 4년간 세수추계 오차가 반복된 상황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이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밝혔지만, 부총리 사과로 넘어갈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최 부총리가 “경제지표를 전망하고 추계모형을 설정하는 초기 단계부터 마지막 세입예산안 편성 단계까지 국회예산정책처, 조세재정연구원, KDI와 함께 정부가 가진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고자 한다”라며 “각 전문기관이 축적하고 보유한 전문성을 활용함과 동시에 협력을 통한 시너지를 창출하여 최선의 세수 추계 결과를 도출할 계획”이라고 밝힌 만큼 철저한 실행이 관건이다.
올해도 반도체 수출이 호황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내수는 여전히 계속 부진하며 하반기엔 수출 증가세 둔화도 예상된다. 여전히 한국경제의 시계는 불투명하고 어두워 보인다. 정부 대응이 미진하면 당연히 내년 세수도 낙관할 수 없다. 의당 정공법이 필요하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현 정부 정책의 기조인 감세가 기대한 낙수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내수 부진과 세수 부족 부작용을 가져오지 않았는지를 냉정히 재평가할 때가 됐다. 경제 정책의 첫 단추는 당연히 냉정한 현실 인식이어야만 한다. 경영학의 구루(Guru)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라고 했다. 지금은 지난 정책들의 성과를 찬찬히 반추하면서 심도 있는 재평가를 해봐야만 한다. 방향은 맞더라도 효과가 크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속도 조절의 여지를 남겨둬야만 한다.
나라 곳간이 비게 되면 경제의 모멘텀(Momentum │ 상승동력)이 떨어지고 개혁 정책을 펼치기도 어렵게 되어 민생은 더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무려 4조 원이 넘는 세수 펑크를 불러온 유류세 인하와 같은 포퓰리즘 대책도 서둘러 거둬들여야만 한다. 기업과 개인의 소득 증대를 위한 투자 활성화, 민생 법안 통과는 더는 한가한 선택 사항이 아님을 여·야·정은 팽팽한 긴장감을 견지하고 각별 명심하여 챙기길 바란다. 더불어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추가 세원을 확보하고 전체 세수를 늘리는 노력을 가일층 강화해야 한다. 내핍과 고통 분담으로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재정 적자를 GDP의 일정 비율 이상 넘지 못하게 강제하는 ‘재정 준칙’의 법제화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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