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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집값이 들썩이는데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2단계 시행을 불과 6일도 안 남은 지난 6월 25일 돌연 시행을 당초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2개월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스트레스 금리 100%가 적용되는 3단계 규제도 내년 초에서 하반기로 연기됐다. 이번 연기조치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허물어 정부 신뢰를 무너뜨리는 횡포라는 비판과 함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간 2단계 시행을 앞두고 대출한도 축소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고객들을 상대로 대출 축소 안내 서비스를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 온 금융기관들은 당연히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범정부적으로 논의 중인 자영업자 대책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연착륙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스트레스 DSR의 시행은 어찌되었든 대출규제를 강화하는 셈이어서 불황 탓에 가뜩이나 자금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다. 아울러 전반적인 ‘부동산 PF 연착륙 과정’도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제2금융권 주담대의 경우 대출액이 줄어드는 차주가 약 15% 정도로 분석돼 이들의 어려움을 고려했다며 서민·자영업자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행을 두 달 미룬다고 해서 그동안 곪아온 두 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면 근시안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는 비판이 거세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최근 들썩이는 집값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시장에 가계대출 총량 억제라는 정부 정책 기조가 느슨해졌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시장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Leverage(차입 투자) 열풍이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 6월 17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5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상승 전환한 서울 주택 가격이 5월까지 두 달 연속 오르며 상승 폭도 지난 4월 0.09%에서 5월 0.14%로 커졌다. 특히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 역시 13주 연속 상승하며 3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이 기간 0.15% 오른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2021년 이후 약 31개월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연이어 물가 상승률 둔화가 이어지자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시장금리가 하락하면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최저 금리가 연 2%대로 떨어지고 있어서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2%대를 기록하는 건 2021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이후 약 3년 만이다. 이대로라면 금리 인하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부동산 매수 심리가 꿈틀대면서 가계부채 증가세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렇듯 서울 아파트값이 연속 오른 데다 금리까지 내려가면서 가계대출이 급상승 중인 최악 상황에서 정부 조치가 부동산 시장 불안을 재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대출 규제까지 연기됐으니, 빚을 내겠다는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칫 9월 1일 대출 규제 2단계 시행 전에 빚을 내겠다는 ‘대출런’이 발생할 경우 집값은 단기에 더욱 들썩일 수 있다. 최근 대통령실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압박 발언에 이어 여당이 한은 부총재와 금융위 부위원장을 불러 민생경제 특위까지 열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정부의 일관된 금융정책에 갑자기 구멍이 나면 국정의 신뢰는 물론 시장경제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임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인용한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소득에서 세금이나 사회보장부담금, 비영리단체로 이전, 타가구로 이전 등의 비소비지출을 공제하고 남는 순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4%로 일본(122%) 미국(102%) 독일(100%)보다 훨씬 높다. 기축통화국도 아닌 한국이 이렇게 가계부채가 많으면 작은 외부 충격에도 경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DSR 규제를 도입해 가계부채를 줄여보겠다는 취지였다. 그게 장기적으로 서민과 자영업자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경제가 흔들리면 서민부터 직격탄을 맞기 때문이다. 정부 주장대로 서민·자영업자 지원이 필요하면 이들을 목표로 한 맞춤형 핀셋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모두에게 일반적·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대출 규제 시행을 갑작스레 연기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 앞선다. 자칫 가계부채가 늘어나 집값만 끌어올리게 되면, 정책 신뢰를 총체적으로 훼손할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할 수 있어서다.
지난 2월 26일부터 은행 주택담보대출에 시행되고 있는 1단계 스트레스 금리는 기본 스트레스 금리 1.5%의 25%인 0.38%가 적용되고 있으며, 은행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제2금융권 주담대에 확대 적용되는 2단계에서는 기본 스트레스 금리 1.5%의 50%인 0.75%가 적용돼 그만큼 원리금 부담액이 커지고 대출한도는 축소된다.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적용되면 은행 및 제2금융권 주담대 대출한도는 유형에 따라 3~9% 감소하고, 은행 신용대출 한도도 1~2% 감소할 것으로 금융위원회는 추산했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번 조치가 급증세인 가계부채 상황은 물론, 부동산시장에도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우려를 한다. 가계부채의 경우, 그렇지 않아도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전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 증가 때문에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6월 들어서만도 불과 20일 만에 4조 4,000억 원 이상 급증했는데, 이러한 추세가 2개월 더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부동산시장에도 자칫 ‘집값 띄우기’ 부작용을 낳기 제격이라는 지적이 비등하다. ‘오락가락 정책’에 따른 혼선과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를 구축할 책임 있는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아무튼 금융위의 이번 2단계 시행 연기조치가 부동산·금융 시장 불안을 조장하는 불쏘시개가 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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