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원가 떨어져도 값은 그대로, 식품기업 ‘악덕상혼’에 경종을

칼럼 / 편집국 / 2024-06-05 14:37:41
박근종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다음 달부터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한층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식품·외식기업들이 정부 압박에 미뤄왔던 제품 가격 인상을 6월부터 일제히 개시하기 때문이다. ‘국민 반찬’ 조미김, ‘필수 장류’ 간장 등 서민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고 일상적으로 먹는 식자재 가격이 잇달아 오르고 있는 데다 아이들이 많이 찾는 초콜릿 과자류, 편의점에서 파는 일부 생필품은 물론 치킨, 면도기·건전지·담배 등 공산품까지 가격 인상이 전방위적이어서 가계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여서다.

지난 5월 26일 관련 유통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대형 마트와 편의점 등 대형 유통채널을 중심으로 주요 식자재의 소비자가격 인상이 본격화한다. CJ제일제당의 올리브유 가격이 최근 30% 이상 오른 데 이어 동원F&B도 밥상 단골인 양반김 가격을 15% 인상한다. 롯데웰푸드는 초콜릿 주원료인 코코아 가격 급등으로 6월 1일부터 빼빼로·빈츠 등 초콜릿 제품 17종의 가격을 평균 12% 인상한다. 빼빼로는 1,700원에서 1,800원으로 100원 오른다. 국내 1위 업체인 샘표식품(248170)도 다음 달 중순 자사 간장 제품 30종의 가격을 평균 7.8% 올릴 예정이다. 대표 제품인 ‘샘표 양조간장 501’의 가격은 11.8%나 인상한다.

이렇듯 최근 식품업체들이 김, 간장 등의 제품 가격을 줄줄이 인상하고 있어, 먹거리 물가가 소득보다 더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더욱 가벼워지고 있다. 물가 부담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 보여진다. 올해 1분기 가처분소득은 월평균 404만 6,000원으로 1년 전보다 1.4% 느는 데 그쳤다. 1분기 외식 물가상승률은 3.8%로 가처분소득 증가율의 2.8배, 가공식품은 1.6배였다. 이렇게 먹거리 물가 상승 폭이 소득 증가 폭보다 큰 현상은 벌써 일곱 분기째 이어지고 있다. 품목별로 햄버거와 비빔밥, 김밥 가격이 1년 사이 6% 넘게 올랐고, 가공식품에선 설탕과 소금값이 20%가량 상승했다.

문제는 원재료비 상승을 이유로 가격을 이미 올렸던 식품기업들이 원재료비가 하락해도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소비자와 밀접한 주요 식품기업 20곳의 올해 1분기 매출원가율을 조사한 결과, 16곳의 매출원가율이 하락했다. 올해 들어 매출액 대비 원가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매출에서 원재료비, 인건비 등 매출원가 비중을 말하는 매출원가율은 낮을수록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가 부담이 감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도 16곳 중 12곳은 제품 가격을 인상했거나, 앞으로 인상을 예고했다.

동아일보(이민아·정서영 기자)에 따르면 1년 전보다 매출원가율은 낮아졌지만, 일부 업체는 오히려 제품 가격을 올렸다. 실제로 20개 식품기업 가운데 롯데칠성음료, 제너시스BBQ(BBQ), bhc, 지앤푸드(굽네치킨)를 제외한 16곳은 영업이익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늘었다. 국내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는 지난해부터 메뉴 가격을 약 10∼20%씩 인상했거나, 조만간 인상할 예정이다. 유지류 가격 상승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일찌감치 가격을 올린 한 치킨 업체는 올해 1분기 매출원가율이 8.6% 하락했고, 영업이익은 2배 넘게 늘었다. 식품 납품가 인상으로 대형 마트에서 파는 초콜릿, 음료수, 김, 간장 등 가공식품 가격도 다음 달부터 일제히 오른다. 그런데 그 상승 폭이 최대 25%에 달하는 등 원재료비 상승 폭을 훌쩍 뛰어넘는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등이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기업이 감당할만한 수준을 넘어섰다”라면서 “가격 인상을 한두 달 늦추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라고 토로한다. 하지만 국제 곡물 가격이 2년 새 25% 내리는 등 원재료비는 안정을 찾아가는 추세다. 그런데 한 번 오른 식품 가격은 도통 내리지 않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원가 상승만큼 원가 하락도 빠르게 반영해야 한다”라며 가격 인하를 촉구했다. 기업들은 재료비 외에 인건비 물류비 등도 올라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세계 곡물 가격이 고점 대비 30% 이상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가공식품 가격지수는 되레 올랐다. 식품회사 20곳 가운데 16곳은 지난 1분기 매출원가 비중이 하락했다고 한다. 원가가 하락했다면 기업은 이를 반영해 소비자가격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 거의 모든 식료품 가격이 도미노 상승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영문을 모를 지경이다.

고물가로 국내 매출액이 늘고, 고환율로 국외 수출이 급증하면서 식품업계는 지난해 최고의 실적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거래소(KRX)에서 운영하는 코스피(KOSPI) 상장 식품기업 37곳 중 23곳의 영업이익률이 개선됐다는 것은 이를 방증(傍證)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이면엔 치솟는 먹거리 물가에 서민 가계는 등골이 휘고 있다. 특히 소득 하위 20% 가구는 지출 가운데 식비 비중이 31.2%까지 치솟았다. 2019년 1분기엔 27.9%였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가구’ 비율이 지난 1분기 26.8%로 2019년 이래 최고를 기록한 것도 밥상 물가 상승 탓이다. 소득 중 식비가 늘어나는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패턴’이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도 서민들이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식품 기업이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거두자 이들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은 데다 식품기업들은 지난 2년간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한 데다 원재료 외에 제반 비용이 올랐다며 가격 인하에 난색을 보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도 2022년 3월을 고점으로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밀가루와 식용유 등 원재료 값도 하락세가 뚜렷해 가격 인하에 난색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물론 지난 4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19.1포인트로 전월보다 0.3% 상승했지만, 지난해 7월 124.6에서 지난 3월까지 매달 하락했다.

당연히 민간 기업에 밑지면서까지 장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고물가 시기엔 기업도 가격 인상을 가급적 자제해야 하는 것이 상도의다. 더구나 원가 부담이 줄었는데도 외려 가격을 올리는 것은 ‘악덕상혼(惡德商魂)’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올해 1분기 주요 식품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등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이는 가격 인상으로 비용 상승분을 상쇄하고 이익까지 남겼다는 의미다. 식품기업의 행태가 고물가를 틈타 과도하게 가격을 올려 다시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이른바 탐욕(Greed)과 물가상승(Inflation)의 합성어인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 │ Greed + Inflation)’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식품 기업의 실적이 개선된 것은 해외 수출이 급증한 덕이 크다지만, 외식 물가가 치솟으며 간편식 등 외식을 대체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그 원인이다. 이처럼 서민들은 씀씀이를 줄여가며 내핍(耐乏)으로 고물가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런 어렵고 힘든 시기에 먹고살기 위해 사지 않을 수 없는 식품을 파는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면서도 원가 절감분조차 제때 반영하지 않는다면 결국 소비자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올해 초만 해도 정부는 식품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어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제품 용량을 몰래 줄이는 이른바 ‘줄어들다(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 Shrink + Inflation)’이나 ‘패키지 다운사이징(Package dounsizing)’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물가 관리에 적극적으로 신경을 쓰고 나서는 모습이었는데 최근 들어서 이마저 느슨해져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정부는 식품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가일층 강화해 ‘악덕상혼(惡德商魂)’에 경종(警鐘)을 울리고, 기업도 소비자 권익 보호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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