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부터 받았다
후배가 사는 충북 제천이 목적지였지만 나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고 싶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일부러 춘천을 거쳐 원주를 들른 후 제천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나에게는 시간이필요했다. 목적지에 천천히 닿고 싶었다.
8시간 남짓 걸리는 버스 여행 동안 나는 내내 앞날을 걱정했다.
1989년 가을이었다. 유난히도 단풍색이 붉었던 그 계절에 나는 방황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버스 안에 앉아 얽히고 설킨 내 머리속실타래를 풀기 위한 묘안 찾기에 골똘했다.
고민의 내용은 단순했지만 심각한 것이었다. 유치원 교사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직업을 구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뭔가 차원이 다른 도전을 할 것인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 중에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남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그럼 내가진정 바라는 삶의 모습은 어떤것일까?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시원스러운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춘천과 원주를 거쳐 제천에 사는 후배 경자네 집에서 1주일을 보내면서도 나는 뚜렷한 방향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제천을 떠나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불쑥 ‘그래, 밖으로 나가자. 해외로 뜨자. 어학연수다’라는 생각을 했다. 특별한 계기도 없었건만 장벽이 첩첩 산중인 한국보다는 바깥 세상에 나가서 제대로 도전다운 도전을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해치워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버스 안에서 혼잣말로 되뇌었다.
‘그래, 김옥란! 넌 1년 안에 한국을 뜨는 거야. 외국에서 네 모든능력을 쏟아 새로운 길을 멋지게 만들어 보는 거야. 지금부터 1년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하늘을 날아 대양을 건너는거야. 그래, 넌할 수 있어.’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단풍잎들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풀어진 넥타이처럼굽이치는 강원도의 아스팔트는 이미 나를 세계의 중심으로 안내하는 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마음을 더욱 다지는 의미에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반문하고대답해 보았다.
‘유학을 다녀오면 과연 당신이 처한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나?’
‘그렇다.’
‘지금의 건강 상태로 유학 생활이 감당되겠나?’
‘하나님이 돌봐 주실 테니 괜찮을 것이다.’
‘그래,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것인가?’
‘영어, 그것만 잘해도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행선지는 미국, 목표는 동시통역사, 성취기간은 2년. 미국으로 가는 길을 알아보고 있을 때, 캐나다의 에드먼턴에서 공부하고 있던 희정을 교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마침 방학을맞아 한국에 들어와 있는 희정에게 이것 저것 캐나다에 대해 물었다.
캐나다가 미국보다 학비가 더 싸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행선지를 캐나다로 바꾸었다. 나는 희정이가 캐나다로 다시 들어가기전에 가능하면 캐나다에 대해 더 알수 있도록 날마다 전화를 걸어 틈나는 대로 그녀를 만났다. 주위에 유학 갔다 온 사람이 없었기에 유학 정보도 경험담도 거의 난 희정에게 의존 할 수 밖에 없었다.
뚜렷한 목표가 결정되고 나니까 마치 기름을 부은 엔진처럼 모든 생활이 그것에 맞추어져 빠르게 돌아갔다. 나는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영어였다. 최소한 1년의 준비 기간을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목표는 500만원이었다. 2년 동안 유학을 하려면 최소한 1,000만원이 필요했지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금액이었다. 1년 이후의생계는 캐나다에서 해결한다는 황당한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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